디지털 무속 공화국, AI 시대에 핀 샤머니즘의 꽃 / Digital Shamanism Republic, the Blooming Flower of Shamanism in the AI Era
디지털 무속 공화국, AI 시대에 핀 샤머니즘의 꽃
인류가 화성에 탐사선을 보내고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성을 대신하는 2025년의 대한민국은 기이한 모순의 정점에 서 있다. 가장 과학적인 시대의 한복판에서 가장 비과학적인 점술 산업이 연 매출 4조 원이라는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산속 깊은 곳이나 깃발 꽂힌 골목길 뒷방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지던 복채의 거래는 이제 스마트폰 속으로 들어와 알고리즘의 날개를 달았다. 최첨단 IT 기술과 원시적인 샤머니즘이 기묘하게 공존하는 이 풍경은 현대인이 마주한 불안의 깊이를 투명하게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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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 운세 |
Digital Shamanism Republic, the Blooming Flower of Shamanism in the AI Era
As humanity sends probes to Mars and artificial intelligence replaces human intellect, South Korea in 2025 stands at the peak of a strange paradox. In the midst of the most scientific age, the most unscientific fortune‑telling industry has built a vast empire with annual revenues of 4 trillion won. What was once the secret exchange of offerings deep in the mountains or in back rooms marked by flags has now entered the smartphone, taking flight on the wings of algorithms. This curious coexistence of cutting‑edge IT technology and primitive shamanism vividly reflects the depth of anxiety faced by modern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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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라인 점 |
- 알고리즘이 점지하는 운명과 디지털 미끼
과거의 무속인은 신령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기도를 올렸지만 현대의 무속인은 유튜브 알고리즘을 분석한다. 호랑이띠는 올해 대박이 터진다거나 이 영상을 보는 순간 돈벼락이 떨어진다는 자극적인 썸네일은 현대판 미끼 상품이다. 우리는 무심코 스마트폰 화면을 넘기다 나도 모르게 그 영상 속에 빠져든다. 이는 고도의 마케팅 기법인 세일즈 퍼널과 닮아 있다. 무료 영상을 통해 불안을 자극하고 이어지는 전화 상담이나 대면 상담으로 유도하며 마지막에는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굿이나 부적으로 연결되는 정교한 비즈니스 모델이다.
이 거대한 시장의 현금 흐름은 삼성전자 부럽지 않다. 영업 이익률은 90퍼센트에 육박하며 대부분의 거래가 현금이나 계좌이체로 이루어지기에 사실상 세금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신령님이 카드 결제를 싫어하신다는 우스갯소리 한마디에 국가의 과세 시스템은 무력화된다. 첨단 기술로 무장한 사회의 한쪽에서 이토록 거대하고 불투명한 지하 경제가 활개를 치는 것은 우리가 이성보다 본능적인 불안에 더 취약한 존재임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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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보는 젊은이들 |
- MZ세대의 가성비 위로와 심리적 안정망
흔히 점집은 나이 든 노인들이나 가는 곳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현재 점술 시장을 먹여 살리는 핵심 고객은 스마트폰과 함께 자란 젊은 세대다. 인류 역사상 가장 합리적이고 고등 교육을 받은 그들이 왜 미신에 매달리는가에 대한 답은 역설적이게도 그들이 너무나 효율적이고 가성비를 따지기 때문이다. 마음이 병들고 미래가 막막할 때 정신과 상담을 받는 것은 기록이 남을까 두렵고 비용도 만만치 않다. 반면 온라인 운세 앱이나 점집은 5만 원 정도의 비용으로 내가 듣고 싶은 답을 즉각적으로 제공한다.
네 잘못이 아니라 때가 안 맞았을 뿐이라는 무속인의 한마디는 취업난과 자산 가격 폭락에 지친 청년들에게 그 어떤 논리적인 위로보다 달콤한 안식처가 된다. 그들은 점을 맹신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심리적 비용으로 그만큼의 돈을 지불하는 셈이다. MBTI로 자신을 정의하듯 사주팔자로 자신의 기질을 파악하는 문화는 이제 하나의 놀이이자 힙한 코드가 되었다. 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삶의 허기를 디지털 샤머니즘이 채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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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굿하는 무당 |
- 기성 종교의 몰락과 대체된 신성
점술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동안 반대편의 기성 종교는 급격한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현대인에게 종교가 요구하는 헌신과 정기적인 시간 투여는 대단히 비효율적인 활동으로 인식된다. 매주 일요일 예배를 드리고 봉사하며 믿음의 부족을 질책받는 시스템은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이들에게 매력이 없다. 반면 점술은 철저한 고객 중심 서비스다. 내가 원할 때 결제하고 필요한 만큼만 위로를 얻고 돌아서면 그만이다.
종교가 제공하던 미래에 대한 확신과 정서적 지지라는 기능을 이제는 더 세련되고 편리한 무속이 대체해 버렸다. 여기에 종교인 과세 논란과 일부 종교 시설의 부도덕함은 대중의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성역 뒤에 숨어 부를 축적하는 종교에 대한 분노는 오히려 거리낌 없이 상업성을 드러내는 점술 시장으로 사람들을 이끌었다. 성직자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자리에 알고리즘이 점지해준 용한 무속인이 들어선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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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낭당 |
- 내 인생의 핸들을 쥐는 이성과 직관
미래가 보인다는 말은 뒤집어 생각하면 미래가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뜻이다. 만약 우리의 삶이 미리 정해진 각본대로 흘러간다면 인간의 자유 의지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점술에 의존하는 순간 스스로 인생의 경로를 결정하고 책임지는 이성의 근육은 퇴화하기 시작한다. 올해는 아무것도 하지 마라는 말에 명백한 기회를 날리거나 귀인을 만난다는 말에 사기꾼에게 투자하는 일은 개인의 비극을 넘어 사회적 손실이다.
물론 인간은 나약하다. 거대한 우주의 질서 앞에서 한 치 앞을 모르는 존재이기에 무언가에 기대고 싶은 마음은 본능에 가깝다. 하지만 진정으로 용한 점쟁이는 남의 손끝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는 자신의 냉철한 이성과 뜨거운 직관이다. 셔터 소리를 죽이고 재두루미의 우아한 비행을 담아내듯 우리도 삶의 소음 속에서 자신만의 리듬을 찾아야 한다.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던져진 쌀알의 모양이 아니라 핸들을 쥐고 있는 나의 손아귀 힘이다. 수많은 글을 쌓아 올린 끈기처럼 삶의 주인으로서 당당히 제 갈 길을 가는 것만이 이 모순 가득한 시대를 건너는 가장 과학적인 방법이다. 그래도 이번 운세를 이미 스마트폰 내용으로 들여다 봤다, 2026년은 하늘 조심 구름조심을 하면 더 행복해진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