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의 서울- 북악산 아래, 가을이 머문 카페/Seoul of K-pop – A Café Beneath Bukaksan, Where Autumn Lingers
- K팝의 서울- 북악산 아래, 가을이 머문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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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암동의 가을 |
부암동, 2025년 가을의 기록
오랜만에 북악산 능선 아래 부암동 길을 찾는다. 이곳은 언제나 잔잔하고 조용하지만, 역사적 무게만큼은 깊게 배어 있는 동네다. 지금은 평화로운 도보 체험길이 된 김신조 침투로 이야기나, 1.21 사태 때 희생한 최규식 경무관의 동상, 그리고 그 옆의 낡은 초소까지. 수십 년의 세월이 이 작은 마을의 공기에 그대로 깃들어 있다. 산모퉁이 카페로 오르는 길목에서 우리는 화려한 서울의 심장부와는 다른, 단단하게 과거를 지탱하는 서울의 얼굴을 만난다.
길상사에서 만났던 짙은 단풍의 기억을 안고 왔건만, 이곳 부암동의 가을은 예상보다 조금 더 나아간 상태였다. 맑고 청명하기보다는 풀린 날씨 속에 연무처럼 흐릿하게 퍼져있는 풍경. 롱패드, 우산, 장갑 등 짊어지고 온 짐들은 거추장스럽지만, 이런 날씨에도 가을은 마지막 색을 놓지 않고 있었다. 산모퉁이 카페를 중심으로 좌측에는 환기미술관이, 오른쪽에는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 자리한다. 이 길은 단순한 카페 가는 길이 아니라, 역사와 예술의 중간 길로 들어서는 입구인 셈이다.
Seoul of K-pop – A Café Beneath Bukaksan, Where Autumn Lingers
Buam-dong, A Record of Autumn 2025
It has been a while since I walked the paths beneath the ridges of Bukaksan in Buam-dong. This neighborhood is always calm and quiet, yet it carries a profound weight of history. Today, it is remembered as a peaceful walking trail, but the story of Kim Shin-jo’s infiltration route, the statue of Chief Inspector Choi Gyu-sik who sacrificed his life during the January 21 Incident, and the old guard post beside it remain. Decades of time are still embedded in the air of this small village.
On the way up toward the café at the mountain bend, we encounter a face of Seoul that is different from its dazzling heart—one that firmly sustains the past.
I came here carrying the memory of the deep autumn foliage I once saw at Gilsangsa, but Buam-dong’s autumn had already moved a little further along. Instead of crisp clarity, the scenery spread hazily like mist in the loosened weather. The long padded coat, umbrella, and gloves I carried felt cumbersome, yet even in such weather, autumn refused to let go of its final colors.
At the center of the mountain-bend café, the Whanki Museum lies to the left, and to the right stands the hill of poet Yun Dong-ju. This path is not simply the way to a café—it is the entrance to a road that leads between history and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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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암동의 가을 풍경 |
- 사색의 길, 빌라 사이로 이어지는 가을
송악사는 보이지 않아도, 언덕길은 꾸준히 위로 이어진다. 길 양쪽에는 빌라들 사이로 작은 밭과 과일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울긋불긋한 숲의 색채는 도심의 번잡함과 대조를 이루며, 걷는 이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다. 가을이면 반가운 열매들이 가지마다 달렸고, 그 노릿한 열매의 냄새는 까마귀들이 즐겨 찾는 영양제가 된다.
길을 오르며 만나는 단풍은 대량으로 익었지만, 이전보다 못한 빛깔이라고 푸념하듯 흐리게 퍼져 있었다. 멀리서 보면 마른 가지가 더 많아 보이지만, 카메라 셔터를 들여다보면 단풍은 아직도 제 색을 내고 있다. 그 틈새에서 단풍 씨앗을 양식으로 하는 오목눈이 같은 새들도 북악산을 출퇴근하는 것처럼 분주하다. 산모퉁이 카페에 다다를 때까지 빌라와 마른 가지들이 시야를 둘러쌌지만, 그 속에서도 바람과 가을색, 그리고 소설 이후의 겨울 같은 봄이 잎과 풍경 속에 미묘하게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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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암동의 카페 풍경 |
- 산모퉁이 카페, 트레이드마크와 풍경의 만남
드디어 산모퉁이 카페의 모서리에 도착한다. 이곳의 트레이드마크인 '딱정이 차', 바로 노란 비틀 자동차가 시선을 잡아끈다. 안은 이미 노쇄해서 쓸모없는 보관함일지라도, 이 언덕배기 카페의 개성과 정체성을 상징하는 중요한 캐릭터가 되었다. 그 앞의 거대한 악어 모형과 수염, 모자로 변장한 무섭게 생긴 돼지 모형은 방문객에게 쉽게 다가서기 힘든 묵직한 표정을 보여주며 마치 12월을 경고하는 듯하다. 이미 카페는 크리스마스트리를 시작하여 계절을 앞서가고 있다.
카페 내부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그야말로 일품이다. 발아래 내려다보이는 빌라들이 숲 속에 그림처럼 박혀 있고, 창의문 길은 시내로 이어진다. 이곳까지 걷는 길이 북악산 둘레길의 일부임을 생각하면, 커피 한 잔을 위해 걸어온 발품이 아깝지 않다. 다만, 이미 다른 곳에서 커피를 마시고 왔음에도 남들이 한다고 하니 점잖게 표시 안내고 두 잔을 더 넣어두는 미묘한 허영심도 이곳에서는 허용된다. 단점이 있다면, 그 언덕배기까지 걸어온 발품을 팔았어도 가격이 '많이 싸지 않다'는 현실적인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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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내 전경 |
- 도시의 연무, 그리고 칼칼한 커피의 맛
카페를 나와 도시로 들어오며 북악산 풍경을 다시 한번 눈에 담는다. 멀리 바라보는 거대한 서울, 세계 10대 도시 중 하나인 이곳은 뿌연 연무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올겨울 예보가 '삼한사미'(사흘은 춥고 나흘은 미세먼지)로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먼지가 더 수시로 올 것이라는 소식은 이 풍경을 더욱 무겁게 만든다.
숲 속의 빌라와 노란 단풍, 그리고 그 너머의 뿌연 도심 풍경을 번갈아 바라본다. 아까 마신 세 잔의 커피 맛이 하얀 연무와 뒤섞여 목구멍에 칼칼함으로 다가온다.
K팝의 인기로 서울의 가을 풍경을 담은 카페로 더욱 유명해진 부암동 산모퉁이 카페. 이곳은 단순한 쉼터가 아니라, 아날로그 감성과 역사, 그리고 현대 도시의 현실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깊은 사색을 던져주는 특별한 공간이다. 따뜻한 초겨울 오후, 산모퉁이 Cafe에서 도시와 자연, 과거와 현재를 모두 담고 돌아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