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의 풍경, 감성을 기록하다/Recording the Year-End Scenery and Sentiment


연말의 풍경, 감성을 기록하다

- 계절의 경계에서 찾은 기록의 힘

2025년의 끝자락이 보름 남짓한 거리로 다가와 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이면 세상은 약속이라도 한 듯 거창한 결산과 화려한 시상식들로 들썩인다. 하지만 나는 그 소란스러운 숫자들의 잔치에 끼어드는 대신 조용히 개인적인 기록들을 훑어보는 쪽을 택한다.

 스마트폰의 사진첩을 천천히 스크롤하고, 지난 일 년간 블로그에 남겼던 문장들을 되짚어보는 행위는 타인이 정해준 트렌드를 쫓는 것보다 훨씬 밀도 있는 시간의 복기를 선사하기 때문이다. 손가락 끝에서 수많은 날이 스쳐 지나간다. 어떤 날은 그저 무심코 지나친 거리의 풍경이었고, 어떤 날은 설명하기 힘든 감정에 휩싸여 셔터를 눌렀던 찰나였다. 기록되지 않고 방치된 사진들은 시간이 흐르면 어느덧 낯선 타인의 풍경처럼 멀어져 가지만, 그 위에 문장을 덧입힌 기억들은 여전히 생생한 온기를 품고 나를 기다린다.


연말-시상식


Recording the Year-End Scenery and Sentiment

– The Power of Documentation Found at the Edge of Seasons

With just about two weeks left in 2025, the end of the year is quietly approaching. Around this time, the world seems to buzz with grand year-end summaries and glamorous award ceremonies, as if by some unspoken agreement. But instead of joining that noisy celebration of numbers, I choose to quietly revisit my own personal records. 

Slowly scrolling through the photos on my smartphone and rereading the sentences I left on my blog over the past year offers a far richer reflection than chasing trends set by others. Countless days slip past my fingertips. Some were nothing more than ordinary street scenes I passed without much thought, while others were moments when I pressed the shutter, swept up in emotions too complex to explain. Photos left unrecorded and forgotten eventually fade into the distant scenery of a stranger, but memories wrapped in words still wait for me, holding a vivid warmth that time cannot erase.


함박눈-설경

- 도심의 하얀 풍경, 박제된 찰나의 미학

기록이라는 것은 참으로 묘한 힘을 지니고 있다. 사람들은 흔히 멀리 떠난 여행지에서의 장관이나 이름난 명소의 풍경만을 기록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한때는 두물머리의 안개 낀 새벽이나 가평의 화려한 불빛 아래에서만 의미를 찾으려 애썼다. 그러나 정작 일상을 지탱하는 힘은 내가 매일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도심의 소박한 조각들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는다. 매일 걷던 회색빛 빌딩 숲과 무채색의 거리도 어느 날 갑자기 쏟아진 눈발에 덮여 하얗게 지워지는 순간, 그곳은 더 이상 내가 알던 지루한 일상이 아니다. 가로등 위에 위태롭게 쌓인 눈송이나 골목길 작은 가게의 창문 너머로 새어 나오는 노란 전등 조명은 그 자체로 완벽한 미학이 된다.


겨울-풍경-이미지


- 풍경을 소유하는 유일한 방법

사람들은 그 차가운 눈발 사이로 발걸음을 재촉하며 집으로 향하기 바쁘지만, 나는 잠시 멈춰 서서 그 하얀 풍경 속으로 렌즈를 밀어 넣는다. 차가운 공기가 폐부 깊숙이 들어오고 손끝이 조금 시려올 때쯤, 사진 한 장과 함께 그날의 생각을 짧은 문장으로 박제한다. 그렇게 블로그에 올린 한 편의 글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가 아니라, 그 차가운 공기와 조명의 온도를 내 삶의 한 페이지로 영원히 귀속시키는 의식이 된다. 남들이 다 가는 유명한 곳이 아니더라도, 내가 머물고 있는 이 자리가 가장 기록할 가치가 있다는 확신이 드는 순간 풍경은 비로소 나의 것이 된다. 세상의 모든 풍경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열려 있지만, 그것을 멈춰 서서 기록하는 사람만이 그 시간을 온전히 소유할 수 있는 권리를 얻는다.


함박눈-도시


- 나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한 처방전

왜 우리는 이토록 끊임없이 기록하는가에 대해 자문해 본다. 기록은 단순히 지나간 일을 잊지 않기 위한 보조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훗날 이 글과 사진을 다시 꺼내 보았을 때, 단순히 풍경을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날의 온도와 공기, 그리고 그때의 나 자신을 다시 만나는 기적을 허락하기 때문이다. 기록되지 않은 시간은 허공으로 흩어져 연기처럼 사라지지만, 문장으로 고정된 시간은 영원히 나의 계절로 남아 내 삶의 등고선을 형성한다. 일 년 전 내가 어떤 풍경에 마음을 빼앗겼고, 어떤 조명 아래에서 위로받았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은 나라는 사람의 내면을 거울로 비추어 보는 것과 같다. 그래서 기록은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전시이기 이전에, 나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한 가장 낮은 자세의 처방전이기도 하다.


V로그-작성중


- 바쁜 연말, 나만의 보폭으로 남기는 기록

2025년의 남은 날들을 숫자로 지워가며 서두르지 않으려 한다. 세상이 정한 속도에 발을 맞추기보다 하루에 단 한 줄이라도 나만의 시선이 담긴 기록으로 이 계절을 채워가고 싶다. 거창한 문학적 표현이 아니어도 좋다. 도심의 하얀 정적 속에서 느꼈던 사소한 경이로움, 따뜻한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느꼈던 안도감, 그리고 길가에 버려진 누군가의 흔적들을 나의 문법으로 옮겨 적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기록되지 않은 시간은 결국 타인의 기억 속에 묻혀 흩어지겠지만, 오늘 내가 남긴 이 문장들은 영원히 나의 계절로 남아 내일의 나를 지탱해줄 것이다. 속도보다는 보폭을, 결과보다는 과정을 기록하며 한 해의 마침표를 찍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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