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의 작은 루틴: 나를 다시 세우는 단단하고 느긋한 습관/A Small Year-End Routine
연말의 작은 루틴: 나를 다시 세우는 단단하고 느긋한 습관
- 한 해를 배웅하며 나를 오롯이 대면하는 시간 달력의 마지막 장이 되면 공기의 무게부터 달라진다.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과 연말 특유의 들뜬 소음이 거리를 가득 채우지만, 역설적으로 마음은 자꾸만 안으로 침잠하기 마련이다. 쉼 없이 달려온 열두 달의 시간이 등 뒤에서 파도처럼 밀려오고, 다가올 새해에 대한 설렘보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발끝을 먼저 적신다. 이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대단한 성찰이나 거창한 내년의 계획이 아니다. 그저 하루를 조용히 닫고 나를 돌보는 아주 사소하고 개인적인 의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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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중에서 1 |
A Small Year-End Routine: Firm and Leisurely Habits to Rebuild Myself
- Facing Myself as I Bid Farewell to the Year
When the calendar turns to its final page, even the weight of the air feels different. The streets overflow with dazzling Christmas decorations and the lively noise unique to the year’s end, yet paradoxically, the heart tends to sink inward. The twelve months that rushed by press against my back like waves, and instead of excitement for the coming new year, a vague sense of anxiety first touches my feet. At such times, what we need is not some grand reflection to show others, nor an elaborate plan for the year ahead. It is simply the quiet closing of a day and the tender care of ourselves through small, personal rituals.
매일 같은 시간에 반복하는 루틴은 생각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외부의 자극과 타인의 시선에 속절없이 흔들렸던 마음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단단하고 묵직한 닻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특히 감정의 파도가 높은 연말에는 일 년치 기억과 회한이 한꺼번에 몰려와 마음의 과부하가 걸리기 쉽다. 이때 나만의 규칙적인 행동이 있으면 복잡한 감정들에 휘둘리지 않고 나 자신을 차분히 갈무리할 수 있다. 루틴은 단순히 시간을 때우는 행동이 아니라,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세상 속에서 유일하게 나를 통제하고 보호하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심리적 안전장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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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중에서2 |
- 온기를 나누는 차 한 잔과 명상보다 깊은 고요한 산책 일과를 마치고 차가운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정성껏 물을 끓이는 것이다.
찻잔을 고르고 찻잎이 뜨거운 물 안에서 천천히 우러나기를 기다리는 그 짧은 시간은, 소란스러웠던 바깥세상과 나를 완전히 단절시키는 첫 번째 관문이다. 이는 단순히 목을 축이는 행위가 아니다. 찻잔에서 피어오르는 따스한 온기를 두 손바닥으로 온전히 느끼며, 차가운 바람을 견디고 돌아온 나 자신에게 건네는 첫 번째 보상이자 다정한 악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를 한 모금 천천히 들이켜면, 긴장으로 굳어 있던 어깨와 목의 근육이 서서히 풀리는 것을 느낀다. 몸의 온도가 기분 좋게 올라가면서 비로소 오늘 있었던 일들이 객관적인 거리를 두고 보이기 시작한다. 어떤 실수였든, 혹은 어떤 성취였든 차 한 잔의 온기 안에서는 모두 공평하게 녹아내려 평온한 무(無)의 상태로 돌아간다.
그 온기를 머금은 채 이어지는 짧은 산책은 머릿속을 맑게 비워내는 데 더할 나위 없는 특효약이다. 혹한의 날씨여도 상관없다. 아니, 오히려 살을 에듯 차가운 바람이 뺨을 스칠 때 내 정신은 비로소 가장 또렷해진다. 매년 이맘때면 늘 같은 길을 걸으며 작년의 이맘때 내가 이곳에서 어떤 꿈을 꾸었는지 조용히 되짚어 본다. 작년보다 조금 더 성숙해졌는지, 혹은 여전히 같은 고민의 굴레를 반복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다정하게 묻는다. 산책은 발을 움직여 잠든 뇌를 깨우는 신성한 과정이다. 몸을 움직이는 그 30분 남짓한 시간 동안, 낮 동안 어지럽게 엉켜있던 복잡한 생각들이 물리적인 움직임의 리듬에 밀려 가지런히 정리되는 신비로운 경험을 한다. 고요한 가로등 아래를 걷다 보면 어느새 마음의 소음은 잦아들고, 오직 규칙적인 나의 발소리만이 정막한 밤공기를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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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중에서3 |
- 시간을 붙잡는 기록, 일기로 마주하는 나의 정직한 성장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다시 책상 앞에 앉아 일기장을 펼치는 순간은 하루 중 나 자신과 가장 정직하게 마주하는 시간이다.
거창한 문학적 표현이나 타인을 의식한 대단한 깨달음을 적으려 애쓸 필요는 없다. 단 세 줄이라도 오늘 내가 느낀 감정의 색깔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내일 나를 위해 꼭 하고 싶은 작은 일이 무엇인지 담담하게 적어 내린다. 기록은 속절없이 휘발되어 버리는 소중한 시간들을 손바닥 안에 잠시 잡아두는 유일하고도 위대한 방법이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잊고 산다. 내가 오늘 얼마나 최선을 다해 살았는지, 어떤 찰나의 순간에 진심으로 웃음 지었는지 기록하지 않으면 그 모든 빛나는 조각들은 과거라는 거대한 어둠 속으로 무력하게 사라진다. 매년 연말이면 지난 일기장들을 한 권씩 들춰보는데, 그때마다 내가 생각보다 훨씬 더 단단하고 근사한 사람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과거의 내가 적어놓은 서툰 고민들을 지금의 내가 읽으며 가볍게 미소 짓는 순간, 나는 비로소 과거의 허물을 벗고 한 뼘 더 자라난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일기장은 나의 취약함을 고백하는 공간이자, 동시에 나의 성장을 증명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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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자취를 돌아보는 순간 |
- 작은 마침표가 만드는 빛나는 내일의 여유로운 시작 처음에는 이 루틴들이 그저 하루의 끝에 남겨진 또 다른 숙제처럼 느껴져 귀찮게 다가온 적도 있었다.
피곤에 절어 돌아온 밤에 차를 끓이고 찬 바람을 맞으며 밖으로 나가는 것이 때로는 고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억지로라도 나를 위한 시간을 내어 스스로를 귀하게 대접하기 시작하자, 삶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과 질감이 완전히 바뀌기 시작했다. 잠자리에 들 때 머릿속을 채우는 그 특유의 개운함과 깊은 평온함은, 그 어떤 물질적인 보상이나 타인의 칭찬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고귀한 감정이다.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대단한 명품을 사주거나 화려한 곳을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작은 시간을 내어 나를 존중하고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는 일임을 비로소 체득했다. 화려한 연말 파티나 남들에게 자랑하기 위한 거창한 계획이 없어도 충분히 괜찮다. 오히려 그런 외적인 화려함보다 나를 향한 사소한 습관 하나가 내면의 평화를 유지하는 데 훨씬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새해라는 하얀 도화지를 맞이하기 전, 지금의 나를 잘 토닥이고 위로해주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둠이 깊을수록 작은 등불 하나가 더 밝게 빛나듯, 당신이 오늘 밤 시작한 그 사소한 루틴이 당신의 내일을 밝히는 명확한 이정표가 되어줄 것이다. 이러한 작은 습관들이 모여 결국 더 빛나고, 더 단단하며, 더 여유로운 '진짜 나'를 만든다는 사실을 절대 의심하지 않았으면 한다.



